와인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와인을 시작한 친구들과 종종 모임을 가지는데, 어느날인가부터 친구들이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백악질 미네랄이 느껴진다.”
“검은 계열의 과실 풍미가 주를 이룬다.”
“삼나무향이 너무 좋다.”
점차 친구들과 함께하는 와인 자리가 불편해집니다. 와인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취미 같습니다. 매일 마시는 물이지만, 아직까지 삼다수와 백산수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30년 넘게 마신 사과주스를 마시면서도 붉은 사과인지, 청사과인지 모르겠습니다. 삼나무는 태어나서 본적도 없습니다.
책을 사서 공부를 할까, 학원을 알아볼까 고민하던 중 문득 손에 들려 있는 ‘솔의향’이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솔향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추석에 송편 만들 때 맡았던 그 솔잎의 향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갑자기 친구들이 말하던 향키트를 구매해도 나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인 취미를 포기해야 할까요?
오기가 생겼습니다. 와인 입문 필독 만화라는 ‘신의 물방울’을 봅니다.
아…저는 주인공처럼 입에 벨트 물고 흙에 코박고 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만화니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진짜 사람은 어떻게 전문가가 됐는지 찾아봐야 겠습니다. 기사를 찾아봅니다. 거기서 제임스서클링의 충격적인 말을 봅니다.
“와인은 공부해야 하는 술이라는 인식이 많은데, 와인은 배우는 게 아니라 마시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가가 와인은 그냥 마시는 것이랍니다.
머리속이 맑아집니다. 취향의 영역을 다른 사람의 취향과 맞추려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겁니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면서 마시는 게 더 맛있고, 누군가는 먹고 마시는데 공부까지 하면 머리가 아픈 겁니다.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취향이 다르다가 정답인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알고 마시는 게 맛있는 사람에게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고, 그냥 그날의 기분데로 마시는 것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냥 마시기만 하면 그것 만으로도 좋은 것입니다.
격투기에서는 많이 맞아 본 사람이 싸움도 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공부를 안해도 많이 마셔보면 알게 됩니다. 하지만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 또한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닙니다.
김치를 40년 정도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김치를 드시면 ‘전라도식이다’, ‘경상도식이다’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내입에 맞다, 틀리다 정도만 느낍니다. 40년간 매일 먹은 음식이지만 아직까지 김치의 지역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저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DJ DOC 분들께서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냐며 깨닫음을 주십니다. 이제 저는 그냥 그대로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든, 그냥 마시기만 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든 서로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와인 모임을 나가고 싶은데, 블라인드 테이스팅 때문에 부담되어 모임에 나가기 부담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와인을 경험해 보고 싶은데,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다양한 와인을 경험할 기회가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걱정마시고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소고기를 먹는데, 그 소고기가 어떤 종의 소를 어느 지역에서 어느 사육자가 어떤 물을 마시게 하고 어떤 사료를 먹여서 몇 개월만 키운 다음 어느 도축장에서 몇도의 온도를 유지한 채로 도축을 한 뒤 어떤 방식으로 포장을 해서 내가 먹는 고기집에 들어온 지 몇일 된 고기라는 정보를 몰라도 40년 정도 남부럽지 않게 소고기 잘 먹어 왔습니다. 게다가 맛있게 잘 먹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는데 눈치를 보지 마세요.
저는 와인의 스토리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스토리처럼 마시면 더 맛있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파이퍼하이직으로 목욕까지 했다는 마릴린먼로의 스토리를 듣고 마릴린먼로를 따라해 봅니다. 목욕까지 할 재력은 없어서 차갑게 칠링된 레어를 한잔 따라 욕조에 몸을 담그고 향을 맡습니다. 우아한 향기가 향수처럼 올라오면서 고급 입욕제를 넣고 반신욕을 하는 것처럼 마음까지 편안해 집니다. 마릴린먼로는 이런 걸 느낀 것일까? 뒤이어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증기가 올라옵니다. 향을 맡는다고 고개를 숙이니 뜨거운 증기가 습하게 코를 때린 것입니다. 기침을 하면서 잔을 떨어뜨립니다.
‘아…망했다’
하지만 덕분에 마릴린먼로처럼 레어로 목욕을 하게 됩니다. 매우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됩니다. 취향의 영역. 취미가 즐겁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운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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